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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군단의 아날로그 인간
김성현은 본인을 ‘아날로그’라고 표현했다.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 누굴 대하는 게 어렵다고. 이번 인터뷰도 큰 용기를 내서 하는 거라고. 그의 말처럼 야구선수 김성현의 사전 정보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을 검색에 몰두했지만 실제로 그의 인터뷰는 많지 않았다. 프로 14년 차, SK 와이번스의 주전 유격수지만 외부에 알려진 정보는 손에 꼽을 만큼 사람들 앞에 나서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 그런 아날로그형 인간이 인싸로 가득한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까. 그가 궁금해졌다.
Photographer 김솔이 Editor 소경화 Location 인천SK행복드림구장
<더그아웃 매거진>과는 6년 만이에요. 그동안 어떤 게 가장 달라졌나요? (9월 3일 인터뷰)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그때랑 똑같아요. 사실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잘 안 나고요. (웃음) 야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전과 같아요. 늘 잘하고 싶어요.
그때는 미혼이었고 지금은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잖아요.
딸이 둘 있는데 지금 다섯 살, 두 살이에요. 엄청 예뻐요.
큰딸은 아빠가 야구하는 걸 알겠어요.
안타 못 치고 오는 날이면 울어요. 아빠 왜 안타 못 쳤냐고. 근데 응원은 안 해줘요. 이제 부끄러운 감정을 알아서 아빠한테 칭찬해주고 그런 걸 부끄러워하더라고요. 딸들의 애정이 고프긴 하지만, 아직 걸음마도 안 뗀 둘째가 있어서 괜찮아요.
예전 인터뷰만 봐도 부끄러움이 많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딸이 아빠를 그대로 닮았네요.
나이를 먹어도 사람 대하는 게 어려워요. 어디 앞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요. 지금도 엄청나게 큰 용기를 내서 하고 있다는 거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이제 정말 몇 경기 안 남았는데, 올 시즌 개인 성적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모든 부분이 아쉬워요. 특히 수비는 더요. 시합에 나가면 좋은 수비를 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런 모습을 많이 못 보여드려서 아쉬움이 남아요.
가뜩이나 체력 소모가 큰 포지션인데, 올 시즌 전 경기에 출장했으니 컨디션 문제도 있겠어요.
그건 핑계일 뿐이에요. 체력 문제를 탓하기 보단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요.
안정감 있는 수비를 위해서는 장비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어요. 지금 쓰고 있는 고글은 언제부터 사용했나요?
올해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정말 잘 맞아요.
어떤 부분이 잘 맞나요?
요즘은 메이커가 다양하잖아요. 근데 밥집을 갈 때도 대부분 원조를 찾아가듯, 고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여러 브랜드를 써봤지만, 원조인 오클리가 가장 편하고 좋아요.
고글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스타일보단 착용감을 우선시해요. 시합을 뛰어야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오클리 고글은 썼을 때 확실히 다른 게 느껴져서 후배들도 많이 쓰고 싶어 하는 브랜드예요.
사실 그를 만나기 전 약간의 각오를 하고 있었다. 워낙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선수라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실제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목소리가 작았다. 그리고 영상 촬영을 낯설어 했다. 하지만 대답은 생각보다 성의 있었고 은근히 상냥했다. ‘큐티 식스’라는 별명이 괜히 붙었겠는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정확히 3명의 선수와 1명의 코치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수많은 동료가 우리를 구경하고 갔다. 겨우 1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를 향한 동료들의 애정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선수는 ‘자발적 아싸’임이 분명하다. 낯선 이들 앞에서는 철벽을 세워놨다가도, 자기 사람들 앞에서는 무장 해제를 하는 것이 김성현의 진가다.
어느덧 프로 14년 차예요. 그동안의 선수 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갑자기 생각하려니 어렵네요. 그냥 물 흘러가듯 하고 있어요.
(옆에서 보고 있던 최정에게) 김성현 선수가 올 시즌 SK 우승의 키는 최정 선수가 잘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최정: 에이, 성현이가 잘하는 거죠.
에디터: 김성현의 14년 야구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최정: (한참을 고민하더니) 야구는 운이다.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김성현: 저랑 똑같아요. 말 못 하는 거. 대화가 잘 안 통해요.
사람 대하는 게 어렵다고 했지만 그래도 쭉 SK에서 생활했기에 동료들과 많은 추억이 있겠어요.
특별히 자랑할 만한 추억은 없지만, 항상 잘 지내요.같이 있는 매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며 생활하고 있어요. (그런 동료들이랑 말이 안 통해서 어떡해요?) 최정 선수 하나로 행복한 게 아니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해도 괜찮아요.
만약 팀 이동이 있었다면 성격적으로 안 맞았을 것 같아요.
(격하게 공감하며) 맞아요. 많이 안 맞았을 것 같아요. 친구 (이)명기가 이번에 또 팀을 옮겼잖아요. NC 다이노스 가서 금세 적응해 잘해나가는 거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라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원팀맨이라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김성현에게 손혁 코치란? 아까부터 뒤에서 보고 계세요.
정말 대단하신 능력을 갖춘 코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 19일, 홈런을 치고 들어온 정의윤 선수의 볼에 뽀뽀하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어요. 해명해볼까요?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에요. 스킨십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딱히 해명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윤 선수가 김성현의 시즌 2호 홈런이 나오면 보답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요. 한번 쳐야 하는데 안 나오네요. 어떻게 보답할지 너무 궁금해요. 노력해서 이번 시즌 끝나기 전에 꼭 확인하겠습니다.
SK에는 가정적인 선수가 많은 걸로 알려져 있어요. 그런 분위기에 본인도 영향을 받나요?
누가 가정적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대요? 혹시 저도 그렇게 소문이 났나요? 그럼 저도 가정적인 걸로 하겠습니다. (너무 갑자기 말을 바꾸는 거 아닌가요?) 아뇨. 저 가정적이에요. 가정적이죠.
자신의 가정적인 면을 어필한다면?
솔직히 전 시즌이 끝나면 많이 해주려고 아껴놓고 있습니다. 시즌 중에는 많이 못 해준 것 같아요.
가정적이지 않은 야구선수 아빠들의 전형적인 대답이었어요.
김성현: 그렇죠? (하하)
제이미 로맥: 뭐해!
에디터: 한 명씩 다 말을 걸고 가네요?
김성현: 안 걸었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카메라 있으니까 일부러 친한 척하는 것 같아요. 원래 안 친해요. (농담)
제가 볼 때 김성현 선수는 ‘자발적 아싸’인 것 같아요.
아싸보단 아날로그로 해주세요. 요즘 트렌드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웃음)
얼마 전 2020 신인 드래프트가 열렸어요. 매년 열리는 행사지만 후배들이 새로 들어올 때마다 감회가 남다르겠어요.
솔직히 누가 뽑히든 크게 관심은 없어요. 항상 있는 일이니까요. 다만 모르는 얼굴이 들어올 때면 세월을 실감하곤 해요. 그래도 후배들이 치고 올라와야 팀이 잘 되는 거니까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선배가 되고 싶은가요?
야구적으로 어떤 선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고요. 그저 후배들이 먼저 말을 걸 수 있는 편한 선배가 되고 싶어요. 어렵지 않은 선배요.
광주 출신이지만 인천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인천은 어떤 곳인가요?
제게 제일 편한 곳이요. 고향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광주보다 인천이 더 편해요.
그럼 마지막으로 팬들한테 한마디 남겨볼까요?
팬분들께… 이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13호 태풍 ‘링링’이 한반도에 북상했다. KBO리그 역시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하루빨리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짓고 싶은 비룡군단에 독이 됐다. 9월 9일 기준, 129경기 82승 1무 46패로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4일 연속 경기 취소로 선수단의 컨디션이 들쑥날쑥해졌다.
그런데도 행복드림구장은 여전히 평화롭다. 선발 로테이션이 꼬여도, 타격감이 떨어져도, 2위 팀이 바짝 추격해와도 SK는 SK다. 늘 화기애애한 팀 분위기가 현재의 성적을 만들었다는 것에는 모두 이견이 없다. 그만큼 선수 간의 케미스트리 하나는 확실하다. 쉬어야 할 선수들이 쉬었으니 이제 됐다. 올 시즌 전 경기에 출장한 김성현 역시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졌다. 비룡군단은 오늘도 통합우승을 향해 달린다.